마라톤, 가장 눈부신 운동 권영심 나는 마지막으로 뛴 것이 언제인지도 모를만큼 뛰지 않는다. 지금 나를 보면 믿지 않겠지만,나는 젊은 시절 잘 뛰었고, 또 뛰어야하는 이유들도 있었다. 걷는 것보다 뛰는 것이 주변의 기척을 물리치기에 좋았다. 전혀 안 뛰기 시작한지 아마 십 년은 되었지 싶다. 힘든 것도 이유가 있겠으나 지금은 만약 뛰다가 심장이 잘못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걷는 것은, 10키로를 걸어도 힘들지만 빨리 걷다가 잠시 쉬면서 걸을 수 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보폭을 넓게 해서 걷는 것이 습관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는 것을 보면 무조건 보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 가운데 마라톤은,티비에서 나와도 보면서 이름도 모르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이 된다. 내가 기안84을 응원하기 시작한 원인도 그의 달리기를 본 이후의 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삼 인중에 마라톤의 황영조가 들어있을 정도다. 그래서 아무리 추운 겨울에 열려도 마라톤의 보조자원 봉사는 들어오면 수락한다. 지난 11월 23일,인천에서 첫 풀코스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42.195Km의 거리의 풀코스를 뛰는 국가대회는 인천에서는 처음이라
사는 곳 ,살아야할 곳 권영심 이십여년 전부터 어느정도 나이가 되면 깊은 산 속이나 오지에 집을 짓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꿈을 키워왔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지 못해도 부지런히 산악회도 따라다니고 여러 곳에 가보기를 좋아했다. 그동안 여러 지인들이 귀촌, 귀어 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삶은 내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십여년 전에 동생뻘 되는 지인이 아이들은 놔두고 부인과 함께 강원도의 깊은 산 속으로 집을 옮겼다. 말만 들었지, 그들이 우리를 초대한 것은 그후 이 년이 지나서였다 . 화천의 깊은 산골이었는데 정말 심심산골이었다. 개간되지 않 은 땅을 사서, 집 한 채를 짓고 계곡물을 끌어 집 안에 수도 시설 을 하고 축사와 밭을 만드는 것으로 이 년을 보낸 것이다. 밤이 되자 주변에 단 한개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밤하늘의 별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 황홀감마저 느꼈다. 이 세상이 아닌듯한 그 적막한 느낌에 더해지는 바람과 별빛들... 그러나 그 부인의 말은 나의 그런 감상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사람이 그립고, 생활하는 모든 것이 너무 어려워서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어느 것 하나라도 도시에서 살 때의 배 이상의
나물,한강토의 목숨줄 권영심 지구의 식물을 다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절대 없다고 본다. 현미경으로 찾아내도 이 지구의 곳곳마다에 있는 식물을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 거기에 더해서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알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마음놓고 식물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의 선조 들의 목숨을 내놓은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이고 동물은 육식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식물은 애초에 인간의 식량에 들지 못 하는 존재였다. 그런 인간이 식물이나 곡물을 섭취하게 된 것으로 유랑의 시대가 종지부를 찍었고 가족과 부족과 국토와 국가가 생겼다. 우리가 쉽게 대하는 곡물과 식물은 인간을 인간다운 삶을 영위 하게 만든 귀중한 키포인트이기도 하다. 금수강산 대한민국 한강토의 이 땅이 얼마나 척박한 곳이었나를 세계사에 출현한 다른 나라들과 대비해 보면 알게 된다. 그림 처럼 아름답고 온갖 기화요초가 생겨나는 땅이었으나, 인간들이 모여 살기에는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그런 땅에서 국가를 이루고 세세만년 살아가게 만든 수많은 요인 들 중의 하나가 나는 나물이라고 감히 말한다. 그까이꺼 나물이? 그러나 이 땅의 역사를 면밀히 공부해보면
[기고] 권영심 논설위원 모죽의 시간 중국의 동쪽 한 마을에 멀리서 상인의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상인은 그 마을의 번화가에 가게를 내고,온 가족이 정성과 친절 을 다해 장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웬지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 앞부터 저 멀리 길 끝까지 쓸고,가게를 청소하고 물건들을 반듯하게 진열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친절을 다했는데도 장사는 여전히 잘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트집잡고 소소하게 마음 상하게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가게들을 일부러 둘러보아도 자신의 가게보다 별다르게 잘해 놓은 곳이 없었기에 상인은 날마다 속앓이가 심해졌습니다. 상인이 이 마을을 택해 온 것은, 어느 곳이나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되는 것을 예전에 여행왔을 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을도 아름답고 인심도 온후해 보였기에,이 마을에 정착해서 성공하고 자손들에게도 안락한 기반을 마련해 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그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는 성실하 고 근면한 사람이어서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할 일을 내팽개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열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손님들이 찾아 주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
상위 1%의 사람들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는 약 오천만명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1950년생을 기준으로 75세 이상의 노령 인구는 얼마나 될까? 2023년 기준, 전체 인구 숫자의 7.7%가 넘고 있으며 2050년엔 이 비중이 25%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것을 직관하자면 인구 네 명 중에 한 명이 75세의 노인이라는 말이니 초고령화 사회가 이미 도래해 있다. 65세 이상을 현재 노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론 노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75세 이상은 노인일 수 밖에 없다. 잘 살아오고 평탄한 생을 보내온 현재의 75세는 예전의 55세 정도로 보아야 한다. 불과 몇 십년 만에 이십여년이 젊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노인들의 삶은 거의 비슷하겠지만 한강토에 태어난 1950년 이전의 노인들의 삶은 특별하다. 그 특별함이 좋은 것이 아니라 나쁜 쪽에 집중 된 특별함이니, 새삼 그 삶의 고단함에 머리가 숙여진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이 터졌고 피난살이에,더 심하면 완전히 고향을 잃었으며 생이별을 겪고 타향살이로 일생을 마쳤다. 먹고 살기 위한 고통의 시간은 전 생애에 이어졌으며 죽을 때까지도 삶의 어려움이 이어지는
인천은 물의 도시이다 권영심 지구별에 물의 도시라고 부름만한 도시가 얼마나 될까? 우리가 모르는 곳도 많겠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진 곳들을 몇 군데 꼽아보자면. 먼저 부다페스트가 있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이며, 동서유럽과 중유럽을 연결하는 흑해를 관통하는 다뉴브강이 있는 도시이다. 유럽 최고의 온천 도시이기도 한 부다페스트는 다뉴브의 진주 라고 불리운다. 다뉴브강은 도나우강이라고도 불리우며 유럽의 많은 곳을 흐르지만, 부다페스트만큼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흐르는 곳도 없다. 이 강과 온천이 부다페스트를 물의 도시라고 불리우게 만드는 것이다. 또 도시 전체가 운하로 이루어진 중국의 소주도 물의 도시이다. 소주미인이라고 예로부터 말하는데,중국의 어느 지방보다 풍부하고 맑은 물이,미인들을 태어나게 한다고 믿고 있다. 태국의 방콕 또한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죽는다할 만큼 강과 운하가 발달한 곳이다. 이탈리아의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두 말이 필요없는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에도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부르는 난빈이 있고 하노이도 물의 도시라고 불리운다. 그렇다면 현재의 대한민국 에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울만한 곳은 어디일까? 태곳적부터 한강토 삼 천리는 삼 면이 바다이기
[권영심 논설위원 기고] 지 나이 지가 먹어 놓고 어느 시대에도 나이 먹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은 물론 기근과 불가피한 자연재해로 예전의 인간의 수명은 지금의 반도 못 되게 짧았다. 그럼에도 장수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런 사람들조차 나잇값을 못 하면 냉대를 받거나, 심하면 부족에게서 축출되었다. 식량을 축내면서 나이만 먹는 것을 용서할 만큼 넉넉한 마을이나 부족은 없었다. 기로 속이 법제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각 나라마다, 마을마다 겉으로 드러나 지 않는 기로 속이 존재했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연륜이 쌓여 생기는 현명함이었다. 그 현명함은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노하우였고, 때로 그것이 부족을 살리고 가족을 위험에서 구했다. 그래서 현명한 노인일수록 젊은이들은 공경했고 받들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노인의 현명함이 필요 없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며, 앞으로 알아야 할 것들도 찾으면 다 알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경험도 전수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시대가 다른 세대의 가치관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간극이 있다. 그러니 노인 공경이나 존중을 말하는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그들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소. 그러나 그 꿈은 달랐소. 그 꿈이 뭔지 아시겠소?" 이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진 사람은, 부모가 일제의 앞잡이였다고, 그래서 청천의 하늘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통곡처럼 내뱉던 어느 재야 사학자였다.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먼 곳으로 떠나,고통이 없는 다른 생의 시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을 믿는다. 아무것도 아닌,시골의 조그만 면의 서기였던 아버지는 일본인보다 더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고 엄마도 못지 않았다. 그가 낱낱이 이야기한 일들은 어쩌면 요즘에도 이어지고 있는 못난 인간들의 갑질들이다. 일제 강점기의 땅에서 태어난 그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자랐다. 동무들과 다른 옷을 입고, 음식을, 운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이 그에겐 행복이었고 부모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그는 듣고 느끼고 알아갔다.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살고있는 일본인 아이들은 그와 놀지 않았고 오막살이에서 사는 동무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 알았다. 그 마을에서 조선인 아이로는 유일하게 중학교에 가고, 하숙 생활을 하면서 그는 오로지 공부
권영심 칼럼 [단지동맹] '안중근, 김기룡, 백규삼, 유치용, 김천화, 강창두, 박봉석, 조응순, 황병길, 강순기, 정원주, 김백춘... ' 이 이름을 듣고 아!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근대사를 알고 있으며,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는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다. 12인의 이 인물들이 대체 무얼 했길래 우리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가?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단 하루의 쉼도 없이, 우리의 독립투사들은 해외에서, 국내에서, 독립에 관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 거리를 굴러 다니던 장돌뱅이, 들병이, 지게꾼 조차도 투쟁의 흐름은 마음속 대하를 이루어, 눈빛으로 얽히어 이심전심이 되었다. 그 눈빛들이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피를 토하며 사지를 찢기며 죽어갔다. 그것들이 독립의 단초였다. 세계의 흐름에 의해 우리가 독립을 맞이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의병에서 시작 된 우리 민중의 독립투쟁의 의지가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절대 독립이 되지 못 했다. 이 나라의 독립의 의지가 독립을 만들었음을, 공부하면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운동사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런 이야기 하나! 단지동맹이 있다. 동의단지회라고도 불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모래알 민족은 누구인가? 어떤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나는 쓸데없이 감상적인 애국심이 많은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의 글을 읽고 또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아가면서 더 발견해 나가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한국인은 모래알이고, 일본인은 찰진 진흙이어서 두 나라의 단결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었다. 여기서 ...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젠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그나마 없는 까닭이다. 아주 예전에 어느 작가가 내 어머니가 나병에 걸렸다고 해서 내 어머니가 아니냐? 그래도 내 어머니이며 내 나라가 그런 지경 이어도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한다고 쓴 글을 읽었었다. 나병 걸린 어머니 같은 나라... 나는 그때도 심히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 나라는 나병이란 치명적인 병에 걸린 상태도 아니며, 오랜 역사 속에서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본연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온 대단한 나라임을 나는 배웠고 느끼고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한강 토인임을 자랑할 수 있기에 나는 이 나라를 무한 사랑한다. 어느 국가가 이 땅에 생겨났어도, 이 나라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분홍 좌석의 비움 몇 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는 눈부신 발전을 하고, 의식과 문화의 수준이 놀라울 만큼 고양되었다. 내가 직접 느끼고 받고 보기 때문에, 마치 강물의 흐름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애정하는 교통 수단인 버스의 변화는 감탄할 정도다. 그럴 시간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스가 만원이 되어 꽉 차는 일도 없고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어느 자가용 부럽지 않다. 그리고 좌석은 더없이 깨끗하고 편안하다. 요즘 신형의 버스는 짐을 놓을 수 있는 칸까지 마련되어 있어,서서 가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얼마 전에, 좀 먼 곳에 있는 대상자에게 보조 식품 을 전달하고 42번 버스를 탔다. 좌석이 비어 있어 앉아서 왔는데,건너편의 앞 좌석이 분홍 좌석 이었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볼 때마다 마음의 물결을 느낀다. 임산부를 위한 예비 좌석인데,서서 가는 사람이 있는데도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20정류장 이상을 가야 하는 긴 거리여서, 나는 마음 속으로 오늘 저 좌석이 계속 비어서 가나,아니면 누가 앉나...혼자만의 내기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도 앉지 않았다. 어르신이 두어명
[매일뉴스] 12의 비밀 [권영심논설위원 칼럼]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이 두 가지 있는데 바케트와 크루와상이다. 크루와상은 가볍고 부드러운, 마치 부서지는 듯한 식감이 느껴지 는 것이 최상인데 거기엔 고유의 비밀이 숨어 있다. 밀가루와 버터를 얇게 층을 쌓아 겹쳐 만드는데, 최상의 바삭함 과 부드러움을 얻기 위해서는 12층으로 반죽을 쌓아야 하는 것 이다. 밀가루 6겹, 버터 6겹의 얇은 반죽이 겹쳐 12겹이 되어야 완벽한 크루와상의 맛을 얻게 된다. 크루와상이란 초승달이란 뜻인데 오스트리아 킵벨이란 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스만제국의 국기 안에 초승달이 들어 있는데 오스트리아에 의해 문을 닫은 제국을 조롱하기 위해, 제빵사들이 만든 것이 시초라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과 같은 최상의 부드러움과 풍미를 얻기 위해서 긴 시간 동안 제빵사들은 많은 실험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12층이란 비밀을 알아냈을 것이다. 크루와상이란 빵으로 시작했지만 숫자 12는 종결 의미가 큰 숫자이다. 우리 주변엔 의외로 숫자 12가 큰 역할을 하고 있고 나아가서 그 주술적인, 큰 의미에 매달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은 열 두달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열
[권영심 작가 칼럼] 불과 몇 십년 전에는 영화나 티비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남성들의 담배 피는 모습이었다. 고뇌할 때, 열심히 일하다가 쉴 때, 무언 가를 탐색할 때, 그리고 글을 쓰는 남성 작가들의 내면의 고독을 내비칠 때 등등...담배는 주인공이나 출연자의 아주 중요한 모티브였다. 담배 끝이 타서 재가 떨어지는 장면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는 공감하는 바가 컸고 저절로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찾았다. "하! 내가 말이야! 바로 그 장면에서 줄담배를 끝도 없이 피웠단 말이야!" 그 허세는 바로 자신과 영화 주인공과의 교감이 그만큼 컸다는 공감의 표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장면은 찾아볼 수도 없고, 현실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은 전염병자 비스무리한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담배의 해악이 워낙 크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제한하는 것들이 많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나라는 비단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다. 영국과 뉴질랜드 등 아예 금연국가를 선언한 나라들도 있다. 우리나라도 실내 금연 정책이 오래 전부터 시행되었으나, 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고 그렇게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청소년들의 흡연이 계속 증
권영심 작가 칼럼 [매일뉴스] 저 멀고 먼 대륙, 아프리카에 에티오피아라는 나라가 있다. 대륙의 동북부 뿔 지역에 자리한 내륙 국가이다. 정식 명칭은 에티오피아 민주 연방 공화국인데, 그 유명한 맨발의 아베베를 배출한 나라이다. 이디오피아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겐 더 친숙하게 알려졌으며 에티오피아가 된 것은 마지막 황제 셀라시에가 폐위된 이후이다. 그리스어 '아이티오피아'가 유래인데, 검은 피부의 사람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인 중에서 유럽인과 가장 흡사한 외모인데도 피부는 가장 검다고 한다. 그러나 뚜렷한 이목구비의 수려함과 깊은 눈빛은, 흑인의 완벽한 미모가 어떠한지 알게 해 주는 외모를 가졌다. 신화 속의 안드로메다가 이 나라의 공주였다고 하고, 솔로몬 왕의 아기를 잉태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 시바의 여왕이 에티오피아인이란 이야기도 있다. 피부는 검지만 외모가 특출하게 도드라진 유럽 쪽이어서 그런 신화가 전승되었을 것이다. 악숨 왕국의 나라이기도 하며 근현대사에서 식민 지배를 받지 않은 아프리카 유일의 나라이다. 또한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유일한 독립국으로, 유럽의 대국을 꺾어 놓은 나라이기도 하다. 1935년 파시트트인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지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