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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칼럼] 그들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달랐다.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그들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달랐다.


"일제 강점기에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소. 그러나 그 꿈은 달랐소. 그 꿈이 뭔지 아시겠소?"

 

이 질문을 우리들에게 던진 사람은, 부모가 일제의 앞잡이였다고, 그래서 청천의 하늘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통곡처럼 내뱉던 어느 재야 사학자였다.

 

30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먼 곳으로 떠나,고통이 없는 다른 생의 시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을 믿는다. 아무것도 아닌,시골의 조그만 면의 서기였던 아버지는 일본인보다 더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고 엄마도 못지 않았다.

그가 낱낱이 이야기한 일들은 어쩌면 요즘에도 이어지고 있는 못난 인간들의 갑질들이다. 일제 강점기의 땅에서 태어난 그는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자랐다. 동무들과 다른 옷을 입고, 음식을, 운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이 그에겐 행복이었고 부모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그는 듣고 느끼고 알아갔다. 동네에서 가장 좋은 집에 살고있는 일본인 아이들은 그와 놀지 않았고 오막살이에서 사는 동무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가서 알았다.

그 마을에서 조선인 아이로는 유일하게 중학교에 가고, 하숙 생활을 하면서 그는 오로지 공부만 했다. 그가 남모르는 공부를 한 것은 조선과 일본의 역사였고, 그 공부는 자신의 부모가 부끄러운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후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잘난 짓을 하지 않았다. 공부도 안 했고 정신나간 사람처럼 살았다고 했다. 방구석에 파묻혀서 하루종일 뭔가를 중얼거리는 그는, 미친 사람 취급받았고 덕분에 징용도 면했다.

해방이 되었고 부모는 형제들과 야반도주했으나 그는 혼자 남아, 오랜 시간을 마을의 머슴으로 살았다. 마을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진짜 역사를 가르쳤고 그것은 부모의 매국에 대한,자식의 속죄였다.

 

"대답해 보시오. 꿈꾸는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그의 형형한 눈빛이 내게 닿았고 나는 일어나서 말했다.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반드시 조선이 독립이 될 것을 꿈 꾼 사람들. 조선이 영원히 일제에 파묻혀 이윽고 완전히 사라질 것을 꿈 꾼 사람들." 내 대답에 그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훌륭한 대답이오. 그 꿈을 꾸었기에 두 부류는 악착같이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해나갈 수 있었소. 우리 부모는 조선의 모든 것에 치를 떨었고, 일본을 끝없이 숭배하고 사랑하고 진심으로 합일되어 조선이 완전히 없어지기를 바랬소. 독립이니 매국이니 그런 생각조차 할 줄 모르고 오로지 일본의 모든 것을 사랑했소.

 

그랬기에 살아 생전 일왕을 만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고 일장기를 목숨처럼 소중히 대했소. 그런데 그런 백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아시오? 그 때 그랬었소... 그런데 말이오. 놀랍게도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 또한 너무 많았던 것 아시오? 겉으로는 물지게를 지고,인력거를 끌고,웃으며 술잔을 채우는 기생조차도 반드시 대한의 독립이 오리라는 꿈을 꾸었단 말이오.

 

그 꿈이 우리의 독립을 이끌어 내었음을 잊지 마시오. 그 꿈꾸는 것을 단 한 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희망이 없는 시간을 살면서도 독립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은 끝없이 생겨났소. 그런 조선인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은 이렇게 치를 떨었소. 곰새끼보다 미련하고 살모사보다 질긴 죠센징...

 

그런 말을 욕으로 듣지 않고 우리의 백성들은 웃으며 줄기차게 꿈을 꾸었소. 그 꿈들이 우리의 광복을 이끌어 내었으니,여기에 헛된 잡소리를 얹으려는 인간들...부디 당신들은 그런 인간들만 은 되지 마시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 사학자를 만나지 못 했다. 그러나 붉게 충혈 된 눈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나가던 그 날의 강의의 기억은 내게 영원하다.

 

숲을 이루는 것은 큰 나무들이라고 생각하지만,바로 그 아래 땅을 뒤덮고 있는 것은 이름 모를,헤아릴 수 없이 많은 초목들이다. 큰 나무만으로는 숲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성들의 꿈이 바로 그런 풀과 나무들이다.

 

우리 백성들이 독립을 향해 끝없이 꿈꾸었기에 우리는 오늘의 대한을 이루었다. 수없이 많은 혐한의 꿈들 또한 있으나, 우리는 오늘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꿈도 자신의 뜻이지만,옳은 것,순리를 향해 지향 하는 꿈은 거대한 염원이 되어 운명을 바라는 대로 이끌어간다. 일제강점기의 백성들의 꿈이 그러했음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한다. 그들의 꿈이 언제나 한 곳으로 향했음을 말이다. 무궁세세의 대한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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