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모래알 민족은 누구인가?
어떤 독자가 내 글을 읽고 나는 쓸데없이 감상적인 애국심이 많은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의 글을 읽고 또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살아가면서 더 발견해 나가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기를 한국인은 모래알이고, 일본인은 찰진 진흙이어서 두 나라의 단결력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했었다. 여기서 ...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젠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그나마 없는 까닭이다.
아주 예전에 어느 작가가 내 어머니가 나병에 걸렸다고 해서 내 어머니가 아니냐? 그래도 내 어머니이며 내 나라가 그런 지경 이어도 나는 내 나라를 사랑한다고 쓴 글을 읽었었다. 나병 걸린 어머니 같은 나라... 나는 그때도 심히 마음이 불편했었다.
이 나라는 나병이란 치명적인 병에 걸린 상태도 아니며, 오랜 역사 속에서 세계의 그 어느 나라보다 본연의 정체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온 대단한 나라임을 나는 배웠고 느끼고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한강 토인임을 자랑할 수 있기에 나는 이 나라를 무한 사랑한다. 어느 국가가 이 땅에 생겨났어도, 이 나라는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본질을 잃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정체성을 이루어나가고 있다.
그런 중에 흙과 모래로 비유하면서 자신들을 최고의 단결 민족이라고 내세우며, 한민족을 모래알이라고 말한 일본인들의 본질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그들의 혼네는 알고 있다.
스스로는 속일 수 없기에, 한민족의 단결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그들이 가장 잘 알기에 그런 말로 민족성을 와해하고 자 했다. 원래 일본족은 가스라이팅에 아주 유능한 민족이다.
한민족은 그 어떠한 지경에서도 뭉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한민족을 모래알이라고 비양 거리며 가스라이팅 하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 1907년, 일제는 조선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1300만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강제로 빌려주었다.
명목은 조선의 발전을 위한 선의의 투자라고 했으나 그것은 강압적으로 '국채'라는 올가미를 씌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빚을 지워놓고 그 빚에 대한 각종 이자를 철저하고 잔혹하게 둘 요량이었다.
일제가 생각한 조선인들은 그 돈을 얼씨구나! 받아서 마구 써재낄 인종들이었다. 작위와 보상금만 주면 가장 최고위의 양반과 위정자들이 앞다투어 나라를 파는 것에 혈안이 되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조선인이라는 백성들을 전혀 모른, 무지의 소치였다. 하늘엔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떨어지는 별똥별도 있으며, 큰 나무도 어느 한 곳은 썩는 부분이 있듯이 그런 부류가 있을 뿐, 제멋대로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이는 이 땅의 백성들이 정작 큰일이 닥치면 어떻게 단결력이 발현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국채보상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대구였다. 일제는 러일전쟁이 끝난 후 고금리 차관을 강제 이행했고 이로 인한 국채가 발생했다. 당시 세출 예산의 1.5배에 달하는 이 금액은 상환 불가능이 제기되었고 국권 상실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제의 계략은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민중들 스스로 이 국채를 갚자는 의식이 불꽃처럼 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김광돈과 서상제가 중심이 되어 '국채보상운동'이란 이름하에 곧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비록 일제의 탄압으로 중도에서 그치고 말았으나, 이 운동이 남긴 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영향력으로 민족 정신의 응집력의 원천이 되었다.
여자들은 반지, 비녀, 노리개, 값비싼 장신구를 아낌없이 내놓았고 난전의 무지렁이도 담뱃값을 내놓을 정도로 팔도의 조선인들은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마음과 뜻을 모운 재물을 내놓았다.
일제는 경악했고 그들은 가혹한 탄압으로 결국 운동을 와해 시 켰으나, 그 운동이 일으킬 후폭풍을 예견하지는 못했다. 이후의 독립운동의 태동이 되었고 민족정신이 발현되면 한민족의 정신적 토대가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었다.
이 정신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물산장려운동이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 때의 금 모으기 운동으로 최고의 빛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
227톤의 금이 모여졌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우리는 3년 8개월 만에 전부 빚을 상환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아기 금반지에서부터 결혼반지, 팔찌, 목걸이, 금두꺼비가 쌓이는 진귀한 광경을 세계인들이 다 보았다.
국민 10명 중에 세 명이 동참했다고 알려졌으니, 어린아이, 청소년, 병자 등등을 제외한 모든 성인들이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저력을 내면에 지닌 민족이다. 순수하게 응결되는 푸른 불꽃을 유전자로 지니고 대물림되어, 한민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 무엇으로도 단정 짓지 말라. 위정자들이, 정치인들이, 썩고 병들었어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강토에 넘치도록 있었으나, 단 한 번도 백성을 이겨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