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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권영심 논설위원 기고] 모죽의 시간

[기고] 권영심 논설위원

 

모죽의 시간

중국의 동쪽 한 마을에 멀리서 상인의 가족이 이사를 왔습니다. 상인은 그 마을의 번화가에 가게를 내고,온 가족이 정성과 친절 을 다해 장사를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웬지 장사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 앞부터 저 멀리 길 끝까지 쓸고,가게를 청소하고 물건들을 반듯하게 진열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친절을 다했는데도 장사는 여전히 잘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트집잡고 소소하게 마음 상하게 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가게들을 일부러 둘러보아도 자신의 가게보다 별다르게 잘해 놓은 곳이 없었기에 상인은 날마다 속앓이가 심해졌습니다.

 

상인이 이 마을을 택해 온 것은, 어느 곳이나 손님이 많고 장사가 잘되는 것을 예전에 여행왔을 때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을도 아름답고 인심도 온후해 보였기에,이 마을에 정착해서 성공하고 자손들에게도 안락한 기반을 마련해 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그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그는 성실하 고 근면한 사람이어서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할 일을 내팽개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열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손님들이 찾아 주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날마다 똑같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밑천을 까먹지 않기 위해 가족들은 절약하고 또 절약했으며 먹는 것조차 줄였습 니다. 그렇게 삼 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젠 정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지 않을까...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당신의 뜻에 따르겠다는 말을 하며 눈물지었습 니다.

 

어느날 상인은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집은 무척 추웠고 그는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지금 나가서 길 을 쓸어보았자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이웃들도 데면데면한데...

 

그러나 상인은 곧 일어나 낡은 옷을 여며 입고 빗자루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습 니다. 조금만 더 해보자...그래도 밑천은 안 까먹을 만큼은 손님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더욱 더 친절하자.

 

그는 스스로 다짐하며 힘을 내어 길을 쓸었습니다. 그가 골목의 끝까지 쓸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끔 가게의 물건을 사러오는 그 마을의 촌장이었습니다. 촌장은 그에게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상인은 빗자루를 세워놓고 촌장을 따라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마을을 벗어나 먼 곳까지 가기는 처음이었지요. 촌장은 그를 아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굉장히 넓은 빈 들판... 산 아래 위치한 너무나 넓은 들판은 비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라는 촌장의 말에 그는 허리를 구부려 보일듯 말듯한 순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대나무의 순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의아해졌습 니다. 이런 대나무밭은 처음 보는 것이었지요. 촌장은 미소를 지으며 상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대나무들은 자네가 우리 마을에 오던 해에 심어졌네 ."
"말도 안됩니다 ! 대나무가 얼마나 빨리 자라는데요. 심은지 4년이 다 되어 가는 대나무가 아직 순도 안자랐다니..."

 

촌장은 여전히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 보면서 말했습니다.

 

"매일 나와서 이 대나무들을 살펴 보게. 이 대나무들이 말 그대 로 우후죽순처럼 커지는 그 때 ,자네의 가게에도 손님이 넘쳐 날 걸세."

 

상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새벽에 일어나 골목길을 쓸고 난 그는 매일 대나무 밭을 살피러 나갔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대나무순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오 년... 오 년만 채워 보리라.

 

오 년이 되는 여름날 아침, 그는 대나무 밭으로 뛰어 갔습니다. 비장하게 입술을 악문 그의 눈 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 졌습니 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보이지도 않던 순이었던 대나무들이 그의 키보다도 크게 자라나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데, 촌장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대나무는 모소라는 대나무일세. 심은지 오 년 만에 자라기 시작해서 며칠 뒤면 울창한 숲으로 변한다네. 오 년 동안 뿌리 들이 끝 없이 퍼져 나가, 땅 속의 양분을 모두 간직했다가 한꺼 번에 이렇게 자라나지. 우리들은 '모죽의 기다림'이라 부른다네. 자네도 모죽이었어. 지난 오 년 ,자네의 뿌리는 우리 마을 깊숙이 내려 이제는 가지를 뻗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을걸세. 그런 기다림이 있고서야만이 황금의 열매가 주어진다네 ."

 

상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다림의 과정을 무시합니다. 단숨에 결과물을 보지않으면 버리고 내팽개치고 외면합니다. 그러나 모죽이 존재 하는 것처럼, 기다림의 시간이 황금임을 알게 되는 일을 우리는 봅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기다림이 필요하듯이,서로가 서로를 만나 한 마음으로 용해되는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하듯이, 어둠이 짙을 때 새벽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기다림의 시간은 황금의 열매를 맺고 이윽고 우리에게 안겨집니 다. 만약 내가 바라는 열매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아직은 인내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을, 스스로가 알아야 하겠지요.
나만의 모죽의 시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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