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진정의 말을 하고 살고 싶다 누구나 다 그럴까? 사람들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할 때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없을 때 속을 내비치는 말이 본의 아니게 뒤 담화가 되어버린다. 당사자에게 바로 그 때, 하고 싶은 말을 하기란 그렇게 어렵다. 더구나 싫은 말을 해야 할 때 바로 전하기란 어지간한 성정이 없이는 힘들다. "나는 솔직하니까 숨김없이 말할래, 오해하지 말고 들어 줘.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하면서 거침없이 후벼파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참 많기도 하다. 거칠고 껄끄러운 말을 여과 없이 해대는 것을 솔직이란 말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정말 솔직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솔직이란 미명하에 자신의 '감정 털이'를 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진정 솔직하고자 한다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 감정의 순화이다. 내 감정을 거르고 걸러내어 정제를 거듭해서 모아진 언어로, 정확한 나의 심정을 전하는 것이 솔직이다. 내 안에서 끓는, 추한 쓰레기들을 무차별로 내놓는 것이 솔직은 아니다. 솔직을 밥 먹듯이 말하면서, 결국은 싸움이 되는 것은 진짜의 솔직을 모르고 감정만을 털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 권영심 칼럼 ] 공감 부족 언제부턴가 나는 어떤 사람이라도 충고하거나 비판하거나 참견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느 순간이라도 어느 때라도 함께 하는 시간에,이야기하고 웃고 들어주면서,내가 뭔가 말하기를 바란 다면 그 때는 이랬으면 하고 말한다. 나날의 시간이 지나갈수록 알게되는 것은,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새로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런 삶에, 다른 삶을 사는 사람 의 충고나 조언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다만 인과연의 부딪힘이 있을 때 할수있는한,마음을 다해 따뜻한 진정이 담긴 말을 전해주면 된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자신의 모양대로 살아가는 것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봐주어야 한다. 공감하지 못 하는 마음으로 말을 나누고 웃는 것의 공허함이,얼 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일종의 결계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상처를 받으면 쉽게 회복되지 못 하고 곪게 되는 것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해진다. 그렇게 되기 싫어서 자기만의 방어를 하면서, 절대 다치기 싫은 공간이 마음 안에서 넓혀지는
[매일뉴스] 우리들은 무엇을 명품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뛰어 나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무엇을 말한다. 기성품이 대세를 이룬 이 시대에, 수공업품만이 명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예 그 흔한 명품 하나도 만져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값비싼 원재료와 수 십 년 간의 내공이 길러진 장인이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명품인 것에는 틀림없다. 거대한 공장 을 세워놓고, 그 안에서 수 천명의 기술자들이 만들어내어, 로고 만 붙여 세상에 내어놓는 오늘날의 명품 업체들은 스스로의 이름 에 먹칠을 하고 귀하게 얻은 퀄리티를 스스로 부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얼마 전의 뉴스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명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면서 올 것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연한 일이다. 원자재의 수 십 배의 이윤을 붙이는 것을 용납해 주는 단 하나의 이유! 명품으로서의 희소성을 이미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향수나 화장품도 명품이 많지만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한 공정이 워낙 까다롭다. 그렇다면 그것들보다 수 십 배는 비싼 각종 사치용품은 그에 걸맞는 당당한 수제기술자가 그 회사에 있어야 만 한다. 그 사람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만들어내야만 명품이다. 그러나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이타심만이 인류를 살린다 불과 몇 년 전에 코로나19라는 점령군이 전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쉼 없는 전진을 했고 그것이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뉴스를 듣다 보면 이게 꿈인가 만화인가, 현실인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떤 전염병도 이렇게까지 인류에게 퍼진 적이 없고 공포를 확산 시킨 적이 없었다. 중세 때의 흑사병도 참혹했으나 전 세계에 퍼지진 않았었다. 그 때와 달리 모든 것이 발달된 현재의 세계가 하나의 감염바이러스에 그렇게 취약할 줄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그런데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코로나 19보다 더 확산되고,누구 나 앓고,누구나 익숙한 병이 있으니 바로 감기와 독감,폐렴이다. 그러나 아무도 감기와 독감과 폐렴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감기 걸린 친구와 식사를 같이 하다가 다음날 옮아도 웃고 말며, 원망 하지도 않고 치료받고 회복한다. 그 누구도 일상을 벗어나지 않고 생업에서 손을 놓거나 기피하지 도 않는다. 그러나 인류가 자연 죽음 외에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병이, 사실은 우리가 전혀 무서워 하지않는 감기 독감이라 는 것을 우리는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감기 독감을 무서워 하는 사람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이십여년 동안 내가 보아온 드라마는 사실 그다지 많지 않다. 나는 기이할 정도의 편집증이 있어, 보는 순간 이것이다! 하는 느낌이 드는 것만 몇 번이고 되풀이 본다. 그외 다른 이가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도 한 컷이라도 보지않고, 다시보기를 통해 내가 좋다고 인정하는 것만 보는 것이다. 그런 드라마의 특징이라면 출연자나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대사의 공감력이 가장 우선이다. 그런 몇 편의 드라마 중에 '미스터션사인'을 대여섯 번 이상 보았다. 장면들도 명장면이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집는 대사 가 때로 창 끝처럼 가슴에 박힐 때가 많았다. 이 드라마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언어는,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는 주문이다. 매국노 이완익이 죽는 모습의 씬에 매국노가 말하기를, "내 하나 죽는다고 다 넘어간 조선이 구해지네?" 이 말에 총을 든 고애신이 차갑게 말한 대사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고애신은 멸시를 담은 눈빛으로 이완익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적어도 하루는 구할 수 있지, 그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나는 그 장면을 수없이 돌려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 나라를 구한다는 것, 생명을 구한
지략과 공로가 있은들 권영심 勇略震主者身危,功蓋天下者不賞 (용략진주자신위, 공개천하자불상) 위의 글은, 사마천의 사기중의 -회음후열전-에 나오는 글입니다. '용기와 지략으로 주인을 떨게 만드는 자는 몸이 위험해지며, 공로가 천하에 널리 퍼진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한 한신은, 모두가 놀라는 큰 전과를 세웁니다. 서하를 건너가 위나라 왕과 하열을 사로 잡았고, 군대를 이끌어 정형으로 내려가서 성안군을 베어 죽이고 조나라를 항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연나라를 제압하고 제나라를 평정했으며, 초나라의 대병 20만 명을 괴멸시키고 용저를 죽이는등 상상치도 못 하는 전과를 세웠 습니다. 이 전과를 본 괴통이 한신을 간곡하게 설득합니다. "장군,부디 제 말을 들으십시오. 용기와 지략으로 군주를 두렵게 만드는 신하는 그 일신이 위태롭고,공로가 천하에 알려진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고 합니다. 장군의 용맹과 공로는 이미 천하에 알려졌고 한나라 왕,유방에게 보고 되었습니다. 천하에 일찌기 없었던 이런 공로는, 천지에 둘도 있을 수 없고 이런 지략 을 갖춘 사람은 아무 시대에나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장군은 군왕을 두려움에 떨게 할 만큼의 위세를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나는 더 강해집니다, 당신의 어깨에 기댈 때에' 사람들이 나에게 의문을 가지고 자주 묻는 것이 있는데 종교가 무었이냐는 것이다. 이것을 한 마디로 대답하면 굉장한 오해를 사고 만다. 이 세상에 종교는 많고 많지만,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는가를 알아보지 않고 무엇을 믿는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사람들의 습관 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라. 지금 내가 믿는 종교가 자신이 원해서 스스로 택한 것인지를. 자신의 종교가 자신이 믿고자 해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인류의 대부분이 세습으로 믿는다. 이것은 종교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니 따질 것 없다. 어느 땅 어느 나라에 태어나는 것에 따라, 이미 종교는 족쇄처럼 그 사람의 삶을 묶고야 만다.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 날 수 없는 것 처럼 종교도 선택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나마 자유 국가에서 성인이 되어 다시 택할 수 있으면 다행이 지만,어떤 종교는 국가를 초월하여 우선인 경우가 많아서 배교를 하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인류의 최후의 전쟁은 종교 전쟁이 자명하고, 지금도 진행중인 대부분의 전쟁은 종교로 인한 것이다. 그만큼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첨예한 일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