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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여름밤에 울리던 아기들의 울음 소리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여름밤에 울리던 아기들의 울음 소리

 

요즘은 아기들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울음은 둘 째치고 아기를 비롯한 아이를 보는 것도 어렵다. 우리 어린 시절, 그 때 그 시절엔 결혼한 여자는 거의 아기를 업고,안고, 걸리고 다녔고 시장이며, 버스며 동네 골목마다에서 아기들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밤새도록 울어도,그만 울리라고 소리 한 번 지를 뿐, 아기들 울음소리는 일상의 구색이었다. 아기들의 우는 소리가 시끄럽다 거나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아기는 세상 의 완벽한 구성원이었고 누구든지 어느 집 아기라도 어르고,업어 주고, 안아주고 무엇이라도 입에 물려 주었다.

 

시장에는 애보개 아이들이 여럿 있었는데,시골에서 인맥을 통해 온 소녀들이었다. 아니,소녀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어린 아이들 이 등에 아기를 업고 살았다. 좀 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밥만 먹여주면 되는 아이들을 시골에서 데려와서 아기를 맡겼다. 애보개 가시나라고 불렀다.

 

아니면 맏이가 학교만 마치면 집에 와서 동생을 봐야 했다. 그것은 당연했고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나 아기들은 무거웠고,등에 업은 무게에 힘들어하며 소녀들은 길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기들을 땅에 내려 놓고 같이 놀려고 놀이에 끼어들기도 했으 나, 아기가 울면 파토가 되었으므로 잘 끼워주지 않았다. 아기를 업은 채 한 쪽에 서서,노는 동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너무 작은 소녀들의 모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분유가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아주 비쌌고 아기들은 거의 모유를 먹었다. 엄마들은 버스 안에서도,길에 앉아서도, 시장의 난전에 서도 유방을 내놓고 아기의 입에 젖꼭지를 물렸고 그것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모습이었고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로 남자에게 물건 값을 흥정하는 광경은 일상적이었다. 첫 아기를 낳은 엄마들의 나이는 불과 이십 사오세를 넘지 않았고 더 어린 경우도 많았다.

 

가슴을 내놓기는 커녕 목 언저리만 보여도 수줍어 하던 아가씨 가,아기만 낳으면 그냥 유방을 내놓고 젖을 먹이는 그 때 그
시절의 모습은 지금도 나를 미소짓게 한다.

 

조선 말기에 서양인이 찍은 우리 풍습 사진 중에는 유독,여인들 이 가슴을 내놓은 사진들이 많다. 짧은 저고리 아래로 유방이 그대로 돌출 되는 사진을 신문에 싣고,아프리카 토인에 빗대는 서양 학자들의 글도 있다.

 

그러나 아기를 낳은 여인들이 가슴을 내놓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있어 온 풍습이며 그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여인은 대지이 며 아기를 잉태해서 낳은 여인은 이미 자모신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그 몸은 신성하게 여김받으며,아기에게 생명을 주는 유방은 성의 전유물에서 벗어난 상태가 된 것이다.

 

성의 전유물이 아닌,자식의 목숨을 잇는 생명줄인 유방을 드러 내는 행위는 수치나 부끄러움을 초월한다. 조선 말기의 여인들 이 그런 것을 알았을 리는 없지만 그것은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조상 대대로 흐르는 피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새 유방을 드러내고 젖을 먹이는 모습들은 사라졌고,공개 적인 장소에서 수유를 하는 것조차 논란꺼리가 되는 요즘 세상 이다. 아기들도 사라졌고, 거리에서나 동네에서나 응애 응애 울던 그 울음소리도 다 사라졌다.

 

간혹 밤에 아이가 울면 옆 집 어딘가에서 바로 신고를 하기 때문 에 아이를 울리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그 때 그 시절에는 만원버스에서 아기들이 울어도, 운전기사도 나무라지 않았고 누구든지 달래려고 사탕 하나라도 꺼내 주곤 했다.

 

업고 안고 걸리면서 머리엔 임을 가득 이고 가던 엄마들의 종종걸음이 사라진 오늘의 세상에서 무엇이 더 사라진 것일까? 세상이 좋아졌다고 다들 말하지만 진정 무엇 이 좋아졌는지 말해 보라고 하면 나는 말할 자신이 없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고, 저녁 불빛이 밝은 집집 마다의 창 안에서 아기의 울음 소리가 사라졌는데 좋아진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여름밤에 모두 장사를 마치면 방 하나에 잠을 자는 집에서는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매대들은 휑하니 비어 있었고 시장은 고요했다. 무더운 방 안에서 벗어나 여기 저기 아무데서 나 누워 잠을 청하면 아기들도 울지않고 잘 잤다.

 

아무리 더운 날이었어도 시장 빈 골목을 지나가는 바람은 시원했고 아기와 엄마들은 걱정없는 잠을 잤다. 간혹 늦잠을 자서 가게 주인이 문 열 때까지 있어도 나무라는 사람 아무도 없었고 기분좋은 덕담이 얹혀졌다.

 

수박을 먹는 날의 아기들이 오줌을 누더라도 한 웃음꺼리일 뿐이었다. 한 아기가 울면 다른 아기도 같이 울고,그 수선거림
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행복한 노래였다.

 

이제 그런 노래는 사라지고 다시는 누구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짐작하지 못할 두려운 불행의 시작인 듯... 나는 그 때 그 시절의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너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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