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생태계,툰드라의 사람들 권영심 명절을 앞두고 강추위가 계속되어 일요일에 가게를 쉬었다. 늦게 열어도 쉬지는 않는다였는데 아들이 극구 말렸다. 덕분에 집안에서 아들이 사다준 B만두를 여러 종류 쪄서 먹으며 뒹굴 뒹굴 잘 지내었다. 이런 시간이 있는 것도 참 좋았다. 이른 저녁부터 다큐를 찾아 채널을 돌렸는데 아주 오래 전에 만 난 그리운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다. 툰드라...지리 시간에나 배우고 완전히 잊어버렸던 그 단어는 나를 붙들고 그 세계로 끌 어 들였다. 나는 숨도 멈추고 몇 시간 동안 몰입해서 보고 또 다시 보았다. 툰드라...핀란드어에서 유래했으며 나무가 없는 지역이란 뜻이 다. 시베리아부터 케나다 북부 지역까지 분포하는데 다큐에서 보여준 곳은 야말지역의 네네츠 사람들이었다. 시베리아의 야말반도의 뜻은 세상의 끝이라는 말이었다. 세상의 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나를 정신없이 잡아 당겼다. 이 툰드라 지역에서 수 천 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살아왔고 살아 가는 네네츠족과,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툰드라는 학교 교과 시간에 배운,책 속의 지명이었지만 엄연히 존재했다. 자연의 엄혹한 조건에서 살아가는,자연 그대로의 사람들. 내가 넋을 놓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권영심 보통의 사람들은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말이 뭔지도 모르고 평생 들을 일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을 잘 모르고 써먹지 않아서일 뿐이지, 의외로 적용될 수 있는 예가 많다. 왜냐하면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란, 긴급 피난시의 정당방위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카르네아데스는 기원전 2C경의 키레네의 회의주의 철학자의 이름인데, 그가 행한 사고 실험으로 인해 카르네아데스의 판자라는 말은 인류의 도덕, 법률, 가치 기준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많은 사람을 태운 배가 난파해서 다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한 사람이 난파선의 조각에 겨우 몸을 실어서 구명을 하고 있었다. 그 판자 조각은 정말이지 단 한 사람의 무게만을 간신히 지탱하 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헤엄쳐 와서 손을 내밀었다. 그때 판자에 의지하고 있던 사람은 그 사람의 손을 판자에서 떼어내어 익사하게 만들었다. 판자를 의지한 사람은 살았고, 그 는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지금도 우리의 형법에서 구구한 의견들 가운데서 적용이 되고 있다.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다른 이의 목숨까지 구할 수 없으며, 도와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외면해도 법적인
[권영심 논설위원 기고] 지 나이 지가 먹어 놓고 어느 시대에도 나이 먹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는 일이 아니었다. 전쟁은 물론 기근과 불가피한 자연재해로 예전의 인간의 수명은 지금의 반도 못 되게 짧았다. 그럼에도 장수하는 사람들은 있었고 그런 사람들조차 나잇값을 못 하면 냉대를 받거나, 심하면 부족에게서 축출되었다. 식량을 축내면서 나이만 먹는 것을 용서할 만큼 넉넉한 마을이나 부족은 없었다. 기로 속이 법제화가 되지는 않았으나 각 나라마다, 마을마다 겉으로 드러나 지 않는 기로 속이 존재했다. 나잇값을 한다는 것은 연륜이 쌓여 생기는 현명함이었다. 그 현명함은 노인만이 가질 수 있는 노하우였고, 때로 그것이 부족을 살리고 가족을 위험에서 구했다. 그래서 현명한 노인일수록 젊은이들은 공경했고 받들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노인의 현명함이 필요 없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며, 앞으로 알아야 할 것들도 찾으면 다 알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떤 경험도 전수받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시대가 다른 세대의 가치관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간극이 있다. 그러니 노인 공경이나 존중을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