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뉴스ㅣ인천=정병길 기자】 일본의 군함도와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과정에서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가 축소되거나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단계에서는 이른바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뒤, 실제 전시와 추도 행사에서는 ‘강제동원’과 ‘강제노동’의 의미를 흐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의문이 커지고 있다.
유네스코는 일본의 약속 불이행을 제어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계유산 등재라는 명분 아래 일본의 선택적인 역사 서술을 사실상 용인하고 있는가.
군함도 등재 당시 일본이 했던 약속은 무엇이었나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하시마 탄광은 2015년 ‘일본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의 구성 자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당시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설 전략을 마련하도록 요구했다. 일본 대표도 많은 한국인과 다른 사람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군함도를 단순히 일본 근대산업 발전의 상징으로만 소개해서는 안 되며, 그 산업시설에서 고통을 겪었던 한국인과 다른 노동자들의 역사도 함께 알려야 한다는 국제적 약속이었다.
그러나, 등재 이후 일본이 마련한 전시에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보다, 일본 측 관계자들의 반론과 ‘차별은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이 부각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더욱이 관련 정보센터가 군함도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설치되면서 현장을 방문한 관람객이 그 자리에서 전체 역사를 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결국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2021년 일본이 관련 결정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공식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위원회는 한국인 등이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노동했다는 사실과 일본 정부의 징용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마련하라고 다시 요구했다. 세계유산 등재 당시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네스코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사도광산에서도 반복된 ‘전체 역사’ 약속

그럼에도 비슷한 논란은 2024년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다시 나타났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주로 에도시대인 1603년부터 1868년까지의 전통적인 금 생산체계에 맞췄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동원 역사는 세계유산의 핵심 가치가 설정된 시기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광산이라는 공간의 역사는 특정 시대에서 갑자기 멈추지 않는다. 에도시대의 채굴 유적을 보존한다는 이유로 같은 장소에서 20세기에 발생한 한국인 동원과 노동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역사라기보다 일본이 선택한 일부 역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전시를 설치하고,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알리며, 희생자를 위한 추도식을 매년 개최한다는 후속 조치를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등재에 동의했다.
하지만 2024년 11월 열린 일본 측 추도행사에서는 ‘강제동원’이나 ‘강제노동’과 같은 강제성을 나타내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일본 대표의 발언과 행사 내용이 등재 당시 한일 간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고 판단해 참석하지 않고 별도의 추도행사를 개최했다.
한국 정부는 이어 2025년 일본이 유네스코에 제출한 사도광산 보존·관리 보고서에 대해서도 한국인 강제동원과 ‘전체 역사’를 충실히 알리기 위한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군함도에서 나타난 ‘등재 전 약속, 등재 후 축소’의 양상이 사도광산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26년 유네스코 문서도 “전체 역사 설명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우려는 유네스코가 2026년 7월 공개한 공식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오는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7월 14일 공개된 결정문 초안은 일본이 사도광산의 해설과 전시에 일부 진전을 보였다고 평가하면서도, 한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일부 자료 외에는 광산의 ‘전체 역사’가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 판단할 정보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결정문 초안은 에도시대에 집중된 세계유산적 가치의 설명을 넘어, 모든 광산 운영 시기의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또 관련 당사국들과 긴밀히 협의해 전시와 해설 전략을 강화하고, 진행 상황을 유네스코에 계속 보고하도록 일본에 권고했다.
다만, 이 문서는 7월 16일 현재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채택되기 전의 결정문 초안이다. 부산 회의에서 어떤 문구로 최종 채택되는지, 일본에 어느 정도의 이행 책임을 부과할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유네스코도 일본의 역사 은폐에 동조하고 있는가

현재까지 확인된 공식 문서만을 놓고 보면 유네스코가 일본과 의도적으로 협력해 한국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은폐하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군함도와 관련해 일본의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고, 사도광산에 대해서도 전체 역사 설명이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며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유네스코가 일본의 역사 서술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유네스코가 일본의 미이행을 반복해서 확인하면서도 실질적인 이행을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함도가 등재된 지 10년이 넘도록 ‘전체 역사’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사도광산에서도 등재 직후부터 추도식 표현과 전시 내용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일본에 적용된 조치는 주로 권고, 추가 보고서 제출, 당사국 간 대화 요구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세계유산 등재의 혜택은 즉시 부여하면서 역사적 책임에 관한 약속의 이행은 일본 정부의 자발성에 의존한다면, 유네스코는 의도와 관계없이 일본의 역사 축소에 국제적 권위를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의도적인 ‘동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약속이 반복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알면서도 등재 지위를 유지하고 권고만 되풀이한다면 ‘결과적인 방조’라는 지적에서는 자유롭기 어렵다.
산업유산인가, 희생자의 기억까지 포함한 인류의 유산인가

군함도와 사도광산은 일본 산업발전의 성과만을 보여주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동원돼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고, 자유를 제한받으며 고통을 겪었던 한국인 노동자들의 삶과 죽음이 함께 남아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유산에만 부여되는 훈장이 아니다. 인류가 함께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장소라면 그 장소의 밝은 역사와 어두운 역사, 지배자의 기록과 피해자의 증언을 함께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유네스코는 일본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를 검토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한국인 피해자와 유족, 연구자들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현장 점검과 전시 내용 검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 역시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모호한 표현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법률과 행정 절차에 의해 동원됐는지, 노동조건과 임금 지급은 어떠했는지, 이동과 퇴사의 자유가 보장됐는지, 탈출한 사람들에게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를 구체적인 자료와 피해자 증언을 통해 공개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등재 과정에서 얻어낸 약속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이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미이행 사항과 한일 간 협의 내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세계유산은 갱도와 건물, 기계설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고 고통받고 희생된 사람들의 기억까지 온전히 기록할 때 비로소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된다.
유네스코가 일본에 세계유산이라는 명예를 부여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역사적 책임을 끝까지 묻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제도는 역사를 보존하는 장치가 아니라 국가가 불편한 과거를 세탁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지금 유네스코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일본의 산업유산을 보호하는 것만큼, 그 산업현장에서 희생된 한국인들의 진실과 존엄도 보호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