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심 컬럼] 화석정에 불 밝혀 임금 가시는길 지키리다

  • 등록 2025.08.21 0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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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심논설위원

 

화석정에 불 밝혀 임금 가시는길 지키리다

 

       [권영심 논설위원 칼럼]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이 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구나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울음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이 시는 율곡 이이가 8세에 지었다는 화석정시 입니다. 내가 조선 명시 10 선 안에 넣은 시이기도 한 이 화석정시는, 아무리 읽어도 8세라는 나이를 찾지 못해 머리가 어지럽기도 합니다.
끝을 가늠할수 없는 천재의 세계를 한낱 범인이 어찌 짐작이나 하겠는지요?

 

이 시에 나오는 화석정은 시향으로도 유명하지만 스토리텔링 으로 오늘날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바가 큽니다.
퇴계 이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는 율곡 이이의 깊고도 절절한 충심이 불꽃이 되어 타올라 사라진 화석정의 이야기를 잠시 할까요?

 

1443년(세종25년) 야은 길재의 유지를 받든 이이의 5대 조부 강평공 이명신이 처음 이 정자를 지었습니다.
1478년 (성종 9년)에 이이의 증조부 홍산공 이의석이 중수하여 몽암 이의석이 이름을 지으니 화석정이라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80여년 동안 빈 터만 남아 있었는데, 1673년 (현종 14년) 이이의 증손 이후방이 재건축을 합니다. 그러나 6.25때 또 다시 완전 소실되어 있던 것을,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의 성금으로 새로 지어 오늘날의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1974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강릉의 외가에서 태어난 율곡은 12세에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9회의 장원을 하며 조정에 출사했습니다.
그러나 10만 양병설을 줄기차게 주장 하던 율곡을, 동인 세력이 삼사를 총동원하여 탄핵하니 율곡은 벼슬을 내려 놓고 낙향을 한 곳이 오늘 날 경기도 파주시 율곡면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 입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시문으로 날을 새며 율곡이 하루도 잊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하인을 시켜 정자 전체에 기름을 먹이는 일이었지요. 율곡의 학문과 시를 모르는 사람들도 그의 일본 침략을 예견한 십만 양병설은 기억할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그의 십만 양병설은 비웃음꺼리였으나 율곡이 세상을 뜬 8년 후, 1592년 4월 13일 부산 가덕도 봉수대에서 왜놈들의 침략을 알리는 봉화가 피어 오름으로 이이의 예언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덕도에서 봉화가 오른지 나흘 뒤에 경상좌수사 박홍이 조정에 왜놈들의 침략을 알리니 조정은 완전 초토화되어 버리고 맙니다.
충주 탄금대에서 간신히 버티던 신립 장군이 무너진 비보가 전해오자, 임금을 비롯한 대신들은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치기에 이릅니다.

 

4월 30일 창덕궁을 빠져나온 어가 행렬이 창의문을 지나고 있을 때 임금의 몽진 소식을 접하고, 분노한 백성들이 대궐과 대신들 의 집을 방화하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시커멓게 가렸지요.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친 임금에 대한 원성은 천지를 울렸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가 행렬은 파죽지세로 몰려오는 왜군을 피해 도망쳐야 했습니다. 행렬이 해음령을 지나 임진 나루에 도착했 을 때는 그믐 사리에 달빛 하나 없는 칠흑같은 밤이었습니다.

 

강심은 깊었고 어둠을 밝힌 횃불은 오히려 오락가락, 그림자를 만들어 도통 앞도 뒤도 구분할수가 없었지요. 이미 몽진을 했는데 여기서 왜군에게 어가가 잡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사직 은 절딴나는 것이었습니다.

 

행렬을 호종한 유성룡의 고함 소리와 우왕좌왕하는 소리들이 절박할 때 홀연 히 저 높은 언덕에서 대낮처럼 밝은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겠습니까?. 마치 기다렸다는듯 한 송이 꽃처럼 그렇게 타올라 강을 훤히 비추는 그것은...

 

"화석정이다!
율곡의 화석정이다!"

 

울음에 잠겨 떨리는 유성룡의 목소리가,비몽사몽의 임금의 귀에도 들렸습니다.

 

그토록 전란에 대비하여 군사력을 키우자고 주장하다가 쫒겨나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 임금이 이 곳을 건너 몽진할 것을 대비하여 화석정에 기름을 먹인 율곡의 충심은 결국 조선 사직을 구해내고 말았습니다.

 

불빛은 강을 대낮처럼 밝히고 어가 행렬이 강을 다 건널 때까지 도 타오르다가 새벽이 오기 전 사그라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한낱 전설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화석정의 전소가 아니었으면 그 밤에 어떤 역사가 벌어졌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이라 할지라도,군주제의 국가에서 임금이 몽진중에 승하하면 사직은 문을 닫고, 조선의문은 하릴없이 닫히고 마는 것이 그 시대의 법이었습니다. 어이없지만 임금이 목숨을 보전해야,조선의 명운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어진 부모는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여 여러가지 방책을 마련하기 마련이고,충신은 자신의 안위와는 관계없이 임 향한 일편단심을 죽는 순간에도 잊지 않습니다.

 

화석정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충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 하게 됩니다. 오늘날 화석정은 그 때의 정자가 아니지만 율곡 이이의 붉은 충심을 되새겨 보는 장소로 한 번쯤 가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 시대에 충이란 낡아빠진 것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 다. 그러나 진정한 충은 이 시대에도 귀하기 이를데 없는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가 닿아 일으키는 시너지는 나라도 구합니다.

조종현 기자 maeilnewstv07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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